네모난 우물

'우물'에 해당되는 글 130건

  1. 위대한 사람
  2. 하얀성-오르한 파묵
  3. 엄마의 올림머리
  4. 세월호
  5. 성장만
  6. 아, 세월호
  7. 마음 속의 연인
  8. 살구 한 개
  9. 엄마
  10. 산맥과 파도

위대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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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사람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있는 사람

혼자 남아 청소하는 사람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

 

 

하얀성-오르한 파묵

오늘 새벽 꿈을 꾸었다.

내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눈에 쉐도잉을 하고 보니 얼굴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네모난 얼굴에 턱 주변으로 수염이 자라 있었다.

끝이 뭉툭한게 며칠전 면도를 한 단면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나가지?'

'면도는 어떻게 하는 거지?'

걱정을 하다가 알람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어젯밤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을 읽었다.

엄마의 올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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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올림머리

 

세어보니 다섯 손가락 안에든다. 내 기억에 엄마가 올림머리를 한 날이.

우리 삼남매 결혼식 치르던 날하고 외할머니 칠순잔치 하던 날. 그리고는 기억이 안난다.

하여튼 엄마는 잔치때에나 미장원에가서 올림 머리를 하고 오셨다.

서울에서 잔치가 있어서 일찍 관광차를 타고 와야하는 날이면 전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와서

그 머리 망가질까봐 밤새 엎드려서 주무셨다.

 

우리 엄마에게 올림머리는 잔치때나 하는 머리스타일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은 장구치고 춤추는 잔치날은 분명 아니다.

무슨 잔치라고 갖다가 이름을 붙여야 할까

감히

 

어머니같은 대통령이라고 우기던 선거꾼들 앞에서 조용히 웃기만하던 그 분이 

풀어진 머리카락 날리며 신발도 신지 안고 달려나와야 할 그날 그시간에

어느 잔치에 가려고

거울 앞에 곱게 앉아서 화장을 하고 올림머리를 하고 있던

그날을.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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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와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녔던 중·고등학교가 근처에 있습니다.

올 해 중학교에 들어간 조카에게 한 학년에 몇개 반이 있냐고 물었더니 세반이요 합니다. 그러면 한 반에 몇 명이나 있냐고 했더니 28명이요 합니다. 3 곱하기 28을 해보니 한 학년이 84명이요 중학교 전체가 대략 252명입니다.

내가 학생들의 숫자를 알고자 한 것은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때는 한 반에 대략 75명씩 다섯 반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달라지긴 했지만 내가 다닐 때의 한 학년의 학생이 지금의 중학교 전체 학생 수보다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실에 앉아서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가는 길이 여러 갈래라 그렇겠지 하면서도 마음이 쓸쓸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게 보입니다. 교복위에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꽃송이 같이 정말 귀엽고 예쁩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현재 고향의 중학교 전체 학생 수보다 많은 아이들이 침몰된 세월호에 갇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소도시로 말하자면 중학교의 학생들 전체가 한 날 다 사라진 것입니다.

충격이고 비극입니다.

4, 새싹이 돋아나고

5, 그 싹이 푸른 잎과 꽃으로 바람에 넘실대는 동안

세월호의 아이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우리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꽃을 피우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생의 가장 싱싱하고 빛나는 순간을 위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견디며 그 목적에 몰입하지요.

 

 

부모되어 당황스럽고 서툴지만 자식을 품안에 처음 안았을 때 밀려온 사랑의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또  함께 커가던 나날이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 아들·딸을 품어보지도 못하게 된 그 부모들의 고통과 애통에 주여 위로하여 주소서.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주여 어루만지소서.

'거리는 한 집 걸러 울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성장만

때로는 시인

 

   성장만- 2014. 5. 18. 박유미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죽을 듯 죽일 듯 자라려고만 한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눕느라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봄 여름 쑥쑥 자란다.

   가을 겨울이 되어도 자라기만 한다.

   꽃밭에 봄꽃이 피고 여름 열매가 열려도

   들녘에 가을꽃이 피고 알곡이 여물어도

   겨울산 소나무 언덕굴 짐승들은 잠자도

   사람은 쉬지 않고 자라기만 한다

   남보다 더 자라려고만 한다

 

   이파리만 무성하려느냐

   꾸짖는 소리도 못 듣고.

아, 세월호

때로는 시인


 

        

 

 

 

 

 

 

                               아, 세월호    

 

                          배를 볼 때마다 기억합니다.

                         바닷물 속에 핀

                         파란 달개비꽃

                         보드라운 강아지풀

 

                         불허된 존재의 향연

 

 

                             2014. 5. 15. 박유미

       

 

마음 속의 연인

남자 목사들 사이에 혼자 낀 여자 목사이야기

월요일, 전주에 갔었다.

남자 다섯에 여자는 나 혼자

원래는 대전까지였는데 뭔가 강력한 에너지가 우리를 끌어들였다.

전주에 가졌다.

그 중 60줄에계신 남성분께서 며느리감을 보여주시려고 돌아가겠다는 우리를 붙잡아 우린 거기 전주에 있었다.

 

남자들, 재밌다.

50위 아래 남자들도 재밌는 구석이 많다. 아주.

 

 그녀가 카페 '그곳' 앞에서 택시에서 내리자 다섯 남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바꾸고 고쳐 앉아가며  머리를 매만지고 헛기침을 하며.....

 

긴 생머리를 귀 뒤로 늘어뜨리고 잔잔한 꽃무늬  원피스에 굽이 낮은 플랫슈즈를 신은 그녀가 사뿐히 들어왔다.

눈망울이 사슴같고 코가 오똑한데다 목선도 가느다란 그녀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데, 그 웃음이 슈가크림같았다.

 

난 빠르게 남자 다섯을 스캔했다.

남자 다섯의 눈이 ㅅ모양으로 변했고 하나같이 모두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인 내가 봐도  미인이었다. 남자들이 꿈꿔오던 오래된 로망의 그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예의가 바르고 20년 이상이나 되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눈을 피하지 않고 차분히 대화하는 그녀에게 모두 반한 것 같았다. 반했다는게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남자들은 그녀에게 반했다.

'반하다'는 그사람은 나의 반이다라는 것일까?

 

어쨋든

내가 보기엔 며느리감이 아니라 연인을

남의 며느리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연인을

첫사랑의 연인을 아니면 꿈꿔왔지만 만나지 못한 마음 속의 연인을 준비없이 만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직 청춘을 간직한채 나이 속에 숨어 수줍게 그녀를 훔쳐보는 그 남자들을 보니

애절한 마음이 들었다.

 

전주 그집 앞에는 연꽃이 아직 피어있었고

 

 

우리 모두는 아직도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살구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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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과 옆집 사이에 참 애매한 곳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다.

연중 이쯤에야 그 나무가 거기 있었지 한다

구석에 비비꼬여서 저게 나무 구실을 할까 무시하고 잊었다가 

노랗게 익은 살구가 하늘 가득 들어오고 나서야

그래 살구나무~한다.

 

자세히 살피니  먹음직한 게 하나 따고 싶다.

누가 보나 살피면서 살짝 나무를 흔들어 본다.

 

그런데 운좋게도 익은 놈 한 개가 떨어진다.

에헤라디여~~

기분이 확 좋아진다.

 

마당에 있는 수돗물을 틀어 씻은 후에

끝을 조금 깨물어 보다가

문득.

 

살구가 폐에 좋습니다 하던 한의사 말이 생각난다.

효민 아빠~ 효민 아빠~ 여기 살구 먹어요, 살구가 폐에 좋대

 

요즘 폐기능이 약해 고생을 하는 남편이 기쁘게 살구를 받아들고 들어간다.

 

살구 껍질 밖에 못먹은 불쌍한 내 입에서 한 바퀴 살구 향이 돌고,

입안 가득 신침만 그저 자꾸 나온다.

 

안되겠다 오늘 밤에 몰래 몇 개 따먹어야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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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 솜방망이 같은 아가의 손가락 끝살을

잘못하다 가위로 잘랐을 때

 아가는 "엄마"하고 울었다.

 아가의 첫 말문이 그렇게 트인걸 놀라면서

 석류처럼  빨간 피  붕대로 누르고 감고

이보다 빠를 수 있을까?

아기를 등에 업고 가파른  언덕길을 단숨에 달렸다.

넘어질 듯 미친 듯  달렸다.

누가 뭐라하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길만 보였다.

 

이보다 용감할 수 있을까?

사람 많은 병원 복도에서 전화를 걸었다.

 누가 듣던 말던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병원비가 없어요. 얼른 와주세요'

걱정없이 잘 사는 척하던 딸노릇 들통이 났지만

내 귀엔 아가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안고 있을 때

한 가지만 보이고

한 가지만 들린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산맥과 파도

때로는 시인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