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우물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에 해당되는 글 5건

  1. 여름날의 풍경
  2. 오리궁뎅이4-스케이트 경기
  3. 오리궁뎅이3, 계란 손에 쥐고 깨기
  4. 오리궁뎅이2-일기장 검사하는 날 2
  5. 오리궁뎅이1-선생님 도시락

여름날의 풍경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1972년 오리의 여름이야기다.

 

여름만 되면 

동네꼬마들인 우리는 물놀이용이라고 하기에는 좀 허접한 나이롱 팬티를 머리에 쓰고 

마을에서 10분쯤 걸어나가면 나오는 개울로 갔다.

 

거기서 우리는 세상 신나게 깔깔 풍덩 거리며 미역을 감고 놀았다.

그러다가 어떤 애가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기겁을 하고 겅중겅중 뛰면

비명소리에 놀란 오빠들이 마치 동네 여자애들의 거머리는 자기들이 다 떼어준다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떼어  철천지 원수인양 거머리를 돌로 쳐 죽이며 의기양양하였다. 

그 때 그 초등생쯤 되는 동네 오빠들은 개울가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난은 자기들이 해결할것임을 믿으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정말로 든든하였다. 지금으로말하자면 물놀이 안전요원이었던 셈이다.

 

거머리사건 때문에  잠깐 물에서 나온 우리들에게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열서너살 되는 언니들의 할 일이 시작되었다. 

언니들은 아카시아잎을 훑어 그 줄기로 우리들의 젖은 머리를 말아  파마를 해준다고 달라 붙었다.

머리카락을 땡겨 아프기도 하고 졸리기도하여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면

언니들의 잔소리와 매미소리가 꿈속처럼  아련히 들렸다.

 

햇빛이 동네를 약간 주황색으로 만들 때쯤이 되어야

우리는 집으로 향하여 걸었다.

아카시아 파마로 뽀그르르 푸서석한 머리에 젖은 팬티를 쓰고 좁은 개울둑을 일렬로 행진.

나는 왜 늘 그걸 머리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갈 때, 손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들지 않아도 되었고

올 때, 떨어지는 물줄기에 진짜  머리가 뜨겁지 않고 시원했던 기억은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고향 길 개울에는 키크고 억센 수풀만 우거져 있고

발가락사이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던 고운 모래도, 하얗게 빛나던 조약돌도,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던 초록 아카시아 나무도 없다.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깔깔대며 웃고 노는 아이들도 없다. 

 

오리궁뎅이4-스케이트 경기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아침 이른 시간인데, 벌써 스케이트 장에는 스케이트 날을 가는 아저씨, 오뎅꼬치를 파는 포장마차가 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논둑을 따라 굵은 동아줄로 울타리도 쳐 놓았다
운동회때만 보았던 만국기도 공중에 달려 있었다

이만하니 딱 기분이 나는 스케이트 대회 날이다
저학년 대회가 먼저 치뤄지고 고학년이 경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저학년은 인원이 몇 안되므로 한꺼번에 경기를 하였다
지난 번에 하얀 털로 레이스를 댄 원피스에 희귀한 흰색 가죽 스케이트를 타던 귀여운 1학년 여자 아이가 1등을 하였다

드디어 우리 4학년 차례가 되었다.
레이스에 들어서기 전에 다시 한번 끈을 묶고 다리를 털며 레이스에 들어섰다
찬 바람이 나는데도 손에 땀이 났다. 
내 옆에는 종선이가 섰다. 
종선이가 타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왠지 뒤뚱거리면서 몸을 심하게 흔들며  타는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러워 저 아이만은 내가 확실히 이길 수 있겠다는 위안을 삼으며 출발선에 섰다 

준비~~ 탕!
총소리와 함께 나는 먼저 출발하였다
레이스를 한바퀴 도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게 몇 미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반 쯤 지났는데 갑자기 심한 숨소리를 내며 종선이가 내 앞으로 나갔다
뒤질세라 열심히 나도 온 힘을 다해 나갔다. 스스로 물찬 제비라 생각하며..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났고, 우리 반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대며 응원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내게 스케이트를 가르쳐준 옆집 형석이 오빠와  스케이트를 물려준 우리 오빠는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를 지르면서
얼음판을 따라 달렸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래서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최선을 다해 달려나갔다

드디어 골인지점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1등, 2등, 3등하며 선생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몇등을 했냐고?
자랑스런 3등
종선이는?
2등 - -

나는 3단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동메달을 자랑스럽게, 감격스럽게 받았다
.......
그리고 여기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날 4학년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3명이었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 화이팅!!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도 화이팅!!


오리궁뎅이3, 계란 손에 쥐고 깨기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 혹은 어떤 이야기들의 일부로 존재하는가?’라는 보다 앞선 질문이 해명될 때에만 비로소 대답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참 좋은 말이죠? 그래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나의 어린 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나의 이야기는 곧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의 일부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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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깨동무라는 잡지를  읽다가 알게 된 것 같다
계란을 손에 쥐고 손아귀의 힘으로 깨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천하장사라도 깰수 없다고 ..
참 신기하기도 하여 당장 부엌에서 계란을 집어와 오른 손 안에 넣고 감싸쥐며 힘을 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힘을 주는데도 계란은 깨지지 않았다
엄마도, 오빠와 동생도 한번 씩 다 해봤다. 정말 아무도 깰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숙이한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거짓말하지마, 천하장사가 아니라도 내가 해도 깨지겠다. 무슨 그런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그래"
가장 친한 숙이가 이렇게 말하니 나는 너무 속이 상했다
"거짓말 아니야, 우리가 다 해봤어, 진짜 안깨져"
그런데도 내 말을 믿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 가서 "쟤가 거짓말한다. 계란을 깰수 없대, 말도 안되는 소리로 빡빡 우긴다"라고
막 떠들어 댔다. 아이들이 나를 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른 학교종이 울리기만을 바랬다

학교 종이 울리자 나는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계란을 하나 꺼내들고 숙이네 집으로 갔다
"숙아, 이리 나와서 이거 한번 깨봐, 깰 수 있나 없나 내가 거짓말하나 안하나"
숙이는 귀찮다는 듯이 계란을 집더니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계란은 깨지지 않았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안깨진다니까?"
숙이는 약간 당황한 듯 "아니야 우리 집 계란으로 해볼래"라고 하며
 자기네 계란을 들고와서 내 앞에서 보란듯이 계란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진짜로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승리감에 취해 아주 기뻐하고 있는데, 숙이 왈
"안깨지네?.. 그래, 알았어" 하고 집으로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날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너무 쉽게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받은 놀림을 생각하면 이렇게  간단하면 안되는 것인데..

이래저래 아주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그래도 거짓말이 아닌 것이 밝혀졌으니 조금의 위안은 되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자꾸 이런 말이 나왔다

"나쁜 기집애~~"

아마 숙이도 씩씩거리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쁜 기집애~~"

오리궁뎅이2-일기장 검사하는 날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오리가 가장 싫어하는 수요일이다
수요일은  일주일동안 쓴  일기를 검사하는 날이다.
선생님의 책상위에는 일기장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도시락을 잡수시면서 일기장을 한권씩 검사하신다.
그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처음으로 들고 읽는 그 일기장이 누구의 것인지를 확인한다
오늘도 선생님은 깊숙히 숨겨둔 내 일기장을 찾아서 들었다
순간 나와 아이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선생님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 웃으시며 일기를 읽고 계신다.
...........

나는 오늘 점심시간에도 혼자서 놀아야한다
여자 아이들은 모두 고무줄 놀이를 하는데 나를 끼워 주지 않는다
나는 저만치 떨어진 잔디밭에 앉아서  구경만 해야한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셔 , 매번 내 일기장만 골라 읽고 재밌어하시니 오리만 편애한다고  아이들이 날 따돌리는 것도 모르고..'
혼자 원망을 하면서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을 쳐다본다

햇빛이 눈부시게 운동장으로 한 가득 뿌려지는 날, 하늘엔 구름 한점이 떠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돗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간다 서쪽 나라로.

오리는 오늘도  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오리궁뎅이1-선생님 도시락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추운 겨울날이었다. 겨울 방학이 불과 며칠 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노란 양은 도시락을 꺼내셨다
그리고 나와 숙이를 불렀다
" 오리,이거 숙직실 부엌에가서 좀 데워와"
우리는 조심스레 선생님의 도시락을 들고 숙직실로 갔다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중요한 일을 시켜주신 것에 감격해하면서..
부엌 연탄불은 연탄구멍마다 불이 솔솔 올라와 있었다
우리는 그 위에 도시락을 얹었다
조금있다보니 바닥이 타는지 누룽지 냄새가 났다
그래서 얼른 뒤집으려하다가 그만 뚜껑이 열리면서 밥이 뒤집힌채로  연탄불 위에 떨어졌다
숙이와 나는 얼른 도시락을 꺼냈지만 이미 밥에는 연탄재가 묻어있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우리는 밥에 묻어있는 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손이 떨렸지만 간신히 재를 뜯어내고 그럴싸하게 잘 펴서 선생님께 갖다 드렸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아이들은 벌써 점심도시락을 다 먹고 뚜껑을 닫고 있었다 
선생님이 웃는 얼굴로 "힘들었지?"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거의 실신할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겨울이지만 등에서 땀이 났다
선생님이 뚜껑을 여는 순간까지 우리는 눈을 떼지 못하고 선생님의 도시락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셨는데 약간 눈썹을 찌푸리셨다
순간  '이제걸렸다, 이제 선생님께 혼날텐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은 정말이지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이"오리, 이리와봐" 하고 말씀하셨다
거의 고개도 못 들고 앞으로 나갔는데 " 너 심부름 잘했는데  하나 더 해라, 가서 빵하고 우유하나 사와"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점심도 못 먹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단지, 선생님이 배고프실까봐 날수만 있다면 날아갔다 오고 싶을 뿐이었다


*2009년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줬던 어린 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려합니다.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은 아마 사랑하는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것입니다.
좀 과장된 엄마의 표정과 변화무쌍한 목소리때문에  평범한 이야기가 조금 특별해질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글로 이야기를 하자니 글재주가 신통치 않아  그 때의 그 감정이 잘 표현되질 않는군요 

조금씩 이야기를 써가려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