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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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풍경

나의 삶과 생각/나의 어린날-오리궁뎅이

1972년 오리의 여름이야기다.

 

여름만 되면 

동네꼬마들인 우리는 물놀이용이라고 하기에는 좀 허접한 나이롱 팬티를 머리에 쓰고 

마을에서 10분쯤 걸어나가면 나오는 개울로 갔다.

 

거기서 우리는 세상 신나게 깔깔 풍덩 거리며 미역을 감고 놀았다.

그러다가 어떤 애가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기겁을 하고 겅중겅중 뛰면

비명소리에 놀란 오빠들이 마치 동네 여자애들의 거머리는 자기들이 다 떼어준다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떼어  철천지 원수인양 거머리를 돌로 쳐 죽이며 의기양양하였다. 

그 때 그 초등생쯤 되는 동네 오빠들은 개울가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난은 자기들이 해결할것임을 믿으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정말로 든든하였다. 지금으로말하자면 물놀이 안전요원이었던 셈이다.

 

거머리사건 때문에  잠깐 물에서 나온 우리들에게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열서너살 되는 언니들의 할 일이 시작되었다. 

언니들은 아카시아잎을 훑어 그 줄기로 우리들의 젖은 머리를 말아  파마를 해준다고 달라 붙었다.

머리카락을 땡겨 아프기도 하고 졸리기도하여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면

언니들의 잔소리와 매미소리가 꿈속처럼  아련히 들렸다.

 

햇빛이 동네를 약간 주황색으로 만들 때쯤이 되어야

우리는 집으로 향하여 걸었다.

아카시아 파마로 뽀그르르 푸서석한 머리에 젖은 팬티를 쓰고 좁은 개울둑을 일렬로 행진.

나는 왜 늘 그걸 머리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갈 때, 손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들지 않아도 되었고

올 때, 떨어지는 물줄기에 진짜  머리가 뜨겁지 않고 시원했던 기억은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고향 길 개울에는 키크고 억센 수풀만 우거져 있고

발가락사이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던 고운 모래도, 하얗게 빛나던 조약돌도,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던 초록 아카시아 나무도 없다.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깔깔대며 웃고 노는 아이들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