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우물

우리들끼리 보낸 첫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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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두 분 안 계신 집에서 저희 세 남매 모여 설을 맞았습니다.

어머니가 차리신 방식과 비슷하게 올케 언니가 음식을 장만했어요

꾸떡꾸덕하게 찐 명태를 보니 어머니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어요

찜솥에서 바로 꺼낸 명태를 호호 불며 뼈를 발라내고 볼살을 같이 뜯어먹던 생각이 났거든요

그 명태가 뭐라고

 

그날 조카들과 함께 둘러앉은 상에 마치 어머니 아버지도 와 앉으신 느낌이 들어 더 훈훈했어요.

오빠도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가시고

못나게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다시는 안 보고 살겠다고 먹었던 다짐들도 

우리 남매들에게는 길게 가져가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그러면 서로 너무 외롭고, 그러기에는 우리 남매들이 서로 아끼기 때문이지요

 

어머니 

설날 아침 우리는 어머니 가시고 처음 밥상에 둘러앉아 고사리나물도 무나물도 먹었어요

어머니 

우리 앞으로 어머니집에서 이렇게 둘러앉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곧 세를 준다 하니 이제 남의 집이 될테니까요

어머니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은 그 정든 집에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아  늦도록 뒹굴거리고 꾸물거리다가

돌아왔어요.

 

그리운 어머니,

비록 우리들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아끼며 잘 지낼게요

나중에 천국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어머니의 마지막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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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한테 가고 싶으세요?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추운 겨울에 가지 말고

내년 봄 따뜻할 때 가세요

 

추우면...

밖에다 솥 걸고 손님 받으니 걱정이니?

 

 

나는 겨울도 못 넘기고 이제 집 앞 벚나무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 가을 날 , 곧 어머니가 가실 것 같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 한 말인데

 

어머니가 없는 가을이라면 ,, 안 그래도 쓸쓸한데

계절이 끝날 때까지 하루하루 어떻게 보낼지 몰라서 한 말인데

 

어머니는 살짝 눈을 흘기며 말하시면서도

 

딸의 말을 너무 잘 들으신건지

바로 닷새 후 훌쩍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겨울이 오기 전,

춥게 장례 치르지 말라고.

 

어머니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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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6. 8:30 AM 79세

사랑하던 어머니를 천국에 보낸 날

 

기차 플랫폼에서 주황색 모자를 쓰고 화사하게 웃던 어머니 사진 한 장

 

어디다 어떻게 보관해야 좋을지 몰라

책상 앞에 세워놨다가

내 성경책 표지 안쪽에 붙여 놓았다

 

새벽기도 시간 2~3시간 전에 가서 먼저 기도하시던 어머니

차가운 마룻바닥에 담요 한 장 덮고 앉아 밤새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그 어머니를 비추던 십자가의 은은한 불빛

 

소천하시기 열흘 전까지 고운 정장 차림에 뾰족구두를 신고

걷기조차 힘들어도 한걸음 한걸음 꼿꼿하게 있는 힘을 다해서

평생 다니시던 예배당으로 가시던 발걸음..

발은 퉁퉁 부은 채로

 

그 발로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에게

어머니는 고운 옷 입고 고운 모습으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