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우물

'박형진의 시'에 해당되는 글 1건

  1. 사랑

사랑

때로는 시인

                           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가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안도현 시인은 위와 같이 큰 시를 포함해 그 크기가 만만치 않은 시들을 엮어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었다.

 

위의 시에 대한 안도현의 짧은 감상을 소개한다.

 사랑을 쓰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신물날 정도로 흔한 그리움이나 기다림 같은 개뼉다귀들을 말끔이 걷어내고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하고, 그리고 

'이 세상 속의 나를' 아는 사랑이란 얼마나 맑고 빛나는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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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그가 있고 사물이 있고 우주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어린아이일 때다.

어린 아이를 낳아기르다 보면 너를 위해 내가 있고 너를 위해 내가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제서야 어른이 된다. 진짜 사랑을 알게된다.

풀여치가 날아와 내게 앉았을 때 나는 그를 위해 풀잎이 되는 것, 한번 풀잎이 되고나면

나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것,

이 세상 속의 나의 존재는 그의 것이며 온 세상의 충만한 생명들의 것,

그것임을 안다.

 

 

그러면 이웃이 누구입니까?

네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라

-눅10:29, 36